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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 MEMORY ] 화학 연구원 출신 주니어 개발자 2023년 회고록

by 환이s 2023. 12. 31.

 

INTRO

매년 하는 말이지만 해가 갈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른다.
특히 이번연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내년엔 또 얼마나 빨리 흘러갈지 벌써 걱정이 될 정도다.

한 해가 끝나기 전에
나의 28년을 뒤돌아 본 회고록을 쓰려한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주니어 개발자의 길을 왜? 선택하고,
더 나아가 나는 개발자로서의 목표까지 순서에 맞게 시작하려 한다.

 


 

 

"꿈이 없는 청년"


나는 사실 꿈이 없던 청년이었다.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 또한 없었다.
특성화고를 나와서 자연스럽게 전공 또한 기계 쪽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전문대학을 다니면서 영혼 없는 사람처럼
기계 관련 자격증을 하나둘씩 취득하는 삶을 살았다.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취업을 하면 나는 행복할까?"

솔직히 대학생일 때부터 나는 겁이 많았던 거 같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없었고 항상 뒤에 숨어서 나 자신을 감추는 일이 많았다.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21살에 10월에 군입대를 하고
9사단에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전문 하사관을 시작으로 모험가의 길을 열었다."

주변 지인들한테만 물어봐도 "군대"라는 키워드는
 부정적인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전역하기 전까지 생활해야 하며
사생활 또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
(부대마다 다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10월에 군 입대를 시작으로
남들과 똑같이 전역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 똑같은 일상
그리고 드라마에서만 봤던 군대 부조리 등,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생활이나, 군생활이나
공허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게 똑같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되려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시간을 낭비할까?"

솔직히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분명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게 많은 소년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생각만 갖고 사는 사람이 되었는지
너무 실망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내 자신을 리프레쉬하기로 다짐했다.

첫 번째로 시작한 건 바로 "다이어트"다.

그때 당시 몸무게가 100kg 정도 나갔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내 몸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8km 러닝과 근력 운동 2시간을 했다.
시간이 흘러 100kg이었던 나는 70kg으로 감량이 되어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두 번째로 시작한 건 "책 읽는 습관"이었다.

나는 21년 동안 책에 손을 대본적이 없었다.
다이어트로 겉을 바꾼다면 속은 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최소 1시간 ~ 2시간의 시간은 책 읽는 시간으로 정했고
전역 때까지 부대에 있는 책은 웬만하면 다 읽어본 거 같다.
그중에서 나는 "말의 품격"이라는 책을 제일 깊게 봤다.

말의 품격 - 이기주


p143 언행 편에 이런 글이 있다.

"리더의 말은 곧고 매서운 직선인 동시에 부드러운 곡선과 같아야 한다."
"때로는 능수능란하게 휘둘러서 도려낼 것을 도려내야 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친친 둘러 감아서 껴안을 대상을 껴안아야 한다."

말의 품격 - 이기주

"말의 품격"을 읽고 세 번째 목표를 찾았다.
그건 바로 "리더"이다.

자신감과 리더십을 갖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솔선수범을 하는 분대장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분대장으로서 생활하면서
분대원들과 상담을 정말 많이 했다.

분대장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분대원들의 이러한 고충이 있는지
몰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여기서 나는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한 번도 상담을 해본 적 없는 내가 분대원들과 상담할 때
"말의 품격"의 책에서 읽은 글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상담을 진행했다.

"사람의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어느덧 병장이 되었을 그때 당시의 나는 전문 하사관을 지원했다.
그 이유는 바로 불안함을 없애고 완벽하게 내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불안함.. 솔직히 병장일 때 다 하는 고충일 거 같다.

특히 나는 군 입대 전에 꿈이 없었다.
그렇기에 전역하고 목표를 갖고 나아갈 아이템이 필요했다.



 

"목표가 생기다"

하사관으로 복무는 오래 하지 않았다.
6개월 추가로 복무하면서 목표가 생긴 것이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나만의 쇼핑몰"을 하고 싶었다.
자신감이 생기고 꾸미는 걸 좋아하다 보니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이때의 나는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9사단 전역날

그래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로 결정했다.
대학 등록금은 군 복무 때 적금했던 돈으로 해결했고,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쇼핑몰 사업을 목표로 갖고 전공을 살려서
화학 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를 모험으로"

솔직히 내 나이 세대는 모든 게 어긋났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자금 마련을 하던 즈음에 코로나를 직면하게 되었다.
다들 알겠지만 코로나를 직면하고 나서 모든 사업자들이 폐업을 하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이 시기에 정말 어려움을 느꼈고 사업을 시작하기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백신이 나와서 단기간에 끝나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코로나는 내 생각과 다르게 오래 걸렸고
그로 인해 투지도 내려가면서 사기도 떨어지고 모든 걸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때 당시에는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기에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1년 안에 찾자"는 생각을 갖고
고향을 벗어나 대전광역시에 정착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짧다.
그러기에 나는 이것저것 다 해보기로 생각했다.
처음에 시작한 일은 금융 쪽 상담팀에서 인바운드로 근무했다.

나는 금융 쪽 지식이 없었기에 퇴근하고 하루에 3시간씩 공부를 하고 하루를 끝냈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금융 쪽과 관련된 일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무래도 돈과 관련된 상담이라서
상담을 받는 고객들의 말은 항상 공격적이었다.

선임분들은 다들 한 귀로 흘리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그런 상담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 생각하며 그만뒀다.

두 번째로 시작한 일은
메이크업학원에서 취업상담멘토로 근무했다.

01

취업상담멘토는 수강생들이 해당 과정을 다 배우고 나서
취업을 희망하면 연결해 주는 일이 주된 업무였고,
국비지원을 통해서 자격증 취득을 희망하는 수강생과의 상담을 담당했다.
(국비지원은 좀 더 아래에서 다루겠다.)

멘토직으로 근무하면서 내가 개발자의 길을 가게 된 계기가 생겼다.

"개발자의 길"

개발자라는 직업은 그때 당시에 블루오션이었다.
대체적으로 비전공자로 시작해서 전직을 꿈꾸는 분들이 많다 보니 경쟁도 심하다는 말을 들었다.

개발자라는 직종으로 전직하시는 분들이 왜 많을까?

그만큼 비전성도 있고 워라밸을 챙길 수도 있고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인한테 이것저것 질문을 했고 그중에서 제일 큰 고충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적성이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적성에 맞을까?
선 고민을 했었고 그 부분에서 지인은 3개월 정도 공부해 보고 그때 다시 결정해도 된다는 조언을 해줬고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추가로 말을 해준 부분이 있다.

"이 일을 하려면 계속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실무 개발자들은 '6개월만 손을 떼도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다'라고 한다.
그만큼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치열한 분야다.
물론 학원에서는 공부만 성실히 하면 강의를 따라갈 수 있다고 할 거다.
하지만 그 너머는 상상과 다르다."

솔직히 지인한테 너무 고마웠다.
지인도 이렇게까지 말해준 이유는 나한테서 "간절함"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목표를 잡고 준비하라는 말을 해줬고
무조건 학원에서 그 기수 안에서는 1등을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나는 무의미한 모험을 끝내고 개발자의 길에 들어왔다.
(실명을 거론할 순 없지만 항상 고마워)

 

"국비지원"

지인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짐을 챙겨서 서울로 상경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무조건 취업한다."라는 목표를 갖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도전했다.
지방 출신이 서울 상경할 때 큰 고충은 아무래도 집이다.

그때 당시에 나는 5평도 안 되는 집에서 시작으로
국비지원 학원을 알아보면서 유로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유로 강의를 보면서 클론 코딩을 하는데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생겼다.

01
오전,오후 스터디

 


"재밌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은 무언가를 진행하여도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이때 나는 처음에 고민했던 적성에 맞은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제일 좋았던 점은 바로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하나씩 오류를 해결하는 재미를 몸소 느끼면서 이 분야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나는 메이크업 학원에서 국비지원 상담을 담당했던 이력이 있어서
학원을 알아볼 때 국비지원 상담사들이 어떤 식으로 상담을 진행하는지 알고 있다.

이 부분은 내용이 길어서 생략하겠다.
(아래 후기글 참고하길 바란다.)

나는 JAVA언어로 웹 페이지를 만드는 커리큘럼을 찾아다녔고
솔직히 내가 어떤 기술 위주로 배워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지만
이곳저곳 직접 두 발로 상담을 받으면서 커리큘럼에 대해 상담을 받고
나한테 우선적으로 필요한 기술 스택을 쌓을 수 있는 학원을 찾아서
그렇게 12월에 학원 수업은 시작되었다.

학원을 들어오기 전에
JAVA 언어를 떼고 들어와서 1주 차 2주 차 때 큰 어려움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3주 차 때부터 점점 따라가기 힘들어졌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인 거 같다. 

남들 4년 동안 배워오는 걸 6개월에 압축해서 따라가는 과정이어서
수업시간에 코드만 따라 치기 바빴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간에 이탈자도 많았다.

매일 7시간 동안 수업이 진행되지만 3시간 동안 진도를 나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습을 하였다.

대부분 이 자습 시간에 집중 안 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이 무리 중에서 열정적인 친구들을 찾았고 그 친구한테 스터디를 제안하였다.

그렇게 그 친구와 함께 수업 시작 전 오전 타임에 만나서 스터디를 하고
저녁 자습 시간에도 동일하게 진행해서 매일 최소 12시간씩 공부를 진행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둘 다 비전공자여서 강사님이 과제를 내도 어려워서 잘 풀지 못했었다.
하지만 꾸준한 스터디를 통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갖다 보니
학원이 끝날 즈음에는 학원 내에서 처음에 지인과 약속했던 기수 내에서 1등을 찍고 나왔다.

국비지원 학원에서 총 2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2번 다 개인적으로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왔고
팀장을 담당하면서 팀원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특히 최종 팀 프로젝트 때 기억이 정말 많이 남았는데
개인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는 팀장을 목표로 잡고 팀원들을 이끌어 나가는 계획이 있었다.
처음에는 강사님이 개인 프로젝트 성적을 토대로 팀장을 정해준다고 하셨는데
끝날 즈음에 갑자기 조를 랜덤으로 편성하셔서 그 조에서 대화를 통해서 선정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최종 팀 프로젝트 사전발표를 진행하면서 
원하는 팀원들과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물론 사전발표를 통해서 좋은 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았고
그 결과로 팀 프로젝트에서도 1등을 할 수 있었다.

 

 

[ 국비지원 ] JAVA 개발자 양성과정 비전공자 수료 후기

드디어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국비지원 과정을 수료를 했습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국비지원 학원에 대한 후기글이나 홍보글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글쓴이는 개발자를 준비하기 전 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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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am ] 최종 팀 프로젝트 사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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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tHub - KiHwanY/trakker-project: 국내 여행 플래너 웹 프로젝트

국내 여행 플래너 웹 프로젝트. Contribute to KiHwanY/trakker-project development by creating an account on GitHub.

github.com


OUTRO

학원에서 열심히 했다고 해서 절대 기고만장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기수 내에서의 30명 인원 중에서 중상층이었을 뿐,
다른 코딩 학원에서 월등하게 잘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분들이 100~200명 정도 수료하고 나처럼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나는 학원에서 수강하면서도 설루션 회사에 취업을 하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취업은 정말 쉽지 않았다.

중소기업 or 스타트업의 공고에 기본 지원자 수가 적으면 200명
많으면 600명까지도 나온다.

이때 나는 설루션 회사에만 이력서를 넣었다가
결과는 서류에서 다 탈락했다.

"생각했다."

솔직히 취준 시기를 오래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 공백기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략 500개의 이력서를 제출하고 
그중에서 4번의 면접을 봤고, 2개의 회사에 합격했다.

첫 번째 회사는
국방부 관련 웹서비스였는데,
일단 기술 스택 부분에서 나랑 어긋났다.

나는 JAVA 개발자로 성장하길 바랐지만
내년부터 파이썬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의향이 있는지?

이 부분에서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어중간한 놈이 되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회사는 
금융 관련 웹 서비스였는데,
정말 기초적인 것들을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했다.

프로젝트에서도 사용했던 기술이었고,
정말 기초였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멘탈이 나갔다.

그래서 다음 면접부터 회사에서 사용되는 기술 관련 용어를
달달 외워서 준비하고 면접을 봤다.

하지만 세 번째 면접본 곳은
기술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기술 질문을 왜 안 물어보지?"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면접관이 "저희는 합격과 동시에 바로 지방으로 출장 가실 거예요. 하실 거예요?"라는
답변을 하였다.

솔직한 감정으로 그 자리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쭤보고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고 나왔다.

다음 면접은 설루션을 보유한 SI 회사였다.
생각보다 기술 스택에 대한 질문도 많았고
총 2명의 면접관이 들어와서 한 명은 인성 관련 질문만
한 명은 기술 관련 질문만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봤다.

그때 당시에 내가 지원했던 곳들보다 연봉도 사무실 환경도 면접 질문 수준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서류 합격 후 2차 면접을 넘어 3차 이사님 면접까지 붙었다.
나름 300명 이상 지원한 회사에 붙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더 열심히 해서 성장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학원을 수료한 지 한 달도 안돼서 취업을 바로 해서 다행이었다.

팀원분들과 자주 연락을 하는데 취업 시장이 너무 어렵다 보니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팀원분들도 있고 가끔 학원 강사님께 스택 관련 대화를 하다 보면
기수 중에 취업에 성공한 인원이 많이 없다고 한다.

힘들게 7개월 과정을 끝냈지만 취업을 못했다면
솔직히 간절함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24년도의 목표"

나는 현재 LG 프로젝트에 투입된 개발자로
다음 주부터 7개월 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24년도의 내 목표는 

1. 평일 최소 2시간 공부 & 운동하기
2. 블로그 활성화
3. 주말 공부
4. 이직 준비

시작한 이상 끝을 보려고 한다.
내년에는 더욱더 믿고 맡길 수 있는 개발자로 성장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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